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재통일 (문단 편집) === 장벽으로 몰려오는 시민들 === || [youtube(7dlfPeeY8mM)] || ||오보 이후 베를린의 모습 (1989년 11월 10일자 타게스샤우)~~앵커도 기쁨을 참지 못하고 있다.~~ || 자유화 조치가 내려졌다고 해도 일단 방송 보도는 '[[비자]]와 [[여권]]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으며 이 정도 가지고는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래서 동서독의 주민들도 반신반의하면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나왔는데 여기서 [[군중심리]]로 인해 사태가 커졌다.[* 이탈리아 ANSA통신에서 '장벽이 무너졌다' 식으로 오보를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동서독의 군중이 장벽 앞에 몰려들던 때였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했던 이 이탈리아 기자에게 독일 정부에서 훈장을 준 것이 와전되어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로 인해 무너졌다는 낭설이 퍼졌다. 사실 낭설도 아니고 리카르도 에르만은 베를린 장벽 앞에 모인 군중심리가 발동될 만한 명분을 쥐어줬다. '''개방'''이 아니라 '''철거'''라는 단어를 사용한 보도가 처음 나온 게 리카르도 에르만의 보도였고 이 기사가 서베를린에 도착한 건 23시 20분 쯤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장벽 개방을 요구하던 시위대가 군중심리에 명분까지 얻었으니 직접 장벽을 때려부수게 된 것이다.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도 이탈리아 출신 패널 [[알베르토 몬디]]가 '이탈리아 덕분에 통일했다'는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유럽에 상당히 보편적으로 퍼진 오해인 듯.] 엄청난 수의 군중들이 몰려오자 별도의 지시를 받지 못한 동독 국경경비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몰려든 군중들은 개방을 요구했고 [[국경경비대]]는 공식 발표대로 [[비자]]와 [[여권]]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군중심리]] 때문인지 몰려든 사람들은 방송 내용을 '''"비자와 여권을 가져오라 한다 = 비자와 여권을 통한 여행이 가능하다 = 지금 즉시 국경이 개방되었다."'''라고 알아들었으며 군중들은 수비대의 해명을 듣지 않고 점점 더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경비대장에게 오히려 '''"방송 못 봤냐"'''고 윽박지르면서 막무가내로 문을 개방하기를 요구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시간이 갈수록 동조하는 사람까지 우글우글 몰려들어서 그 숫자가 검문소마다 수천 명씩 달할 정도로 증가했다. 이미 [[국경경비대]]에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상부에 보고를 했지만 이미 동독 정부조차 뭘 어떻게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밤 10시 무렵에는 국경 경비소에 모여드는 주민들이 만 명대에 달하면서 통제 능력을 상실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시민들을 상대로 유혈 진압을 하다가 분노한 시민들에게 죽도록 쳐맞고 몰살당하든가, 지시도 없고 규칙에도 어긋나지만 얌전히 통과시키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경비대원들은 후자를 택하고 물러났다. 이 상황에서 베를린 장벽을 철거한다는 내용의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가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으니 급기야 양쪽 주민들이 [[망치]]와 [[곡괭이]]에 중장비까지 가져와서 [[베를린 장벽]]을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11월 9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베를린 장벽은 여기저기서 박살났으며 [[동서독 국경]]도 몰려드는 군중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개방되었다. [[동독]] 주민들은 [[트라반트]]를 타고 달려와 [[서독]]에 도착했으며 서독 주민들은 그들을 환영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샤보프스키의 말실수와 언론의 오보, 군중심리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하룻밤만에 [[동서독 국경]]은 시민들의 손에 파괴되었다. 이때의 상황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1962)|김정운]] 교수의 에피소드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베를린 [[동독]] 난민 수용소 경비실에서 경비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베를린 시민들이 난민 수용소에 갇힌 가족들을 보러 오느라 몰려들었다고 하며 밀려오는 사람들을 저지하고 수용소 문을 여는 열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치했는데 끝까지 지켜냈는지 아니면 결국 탈취당했는지는 불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